2010년 10월 17일

퇴원 및 비중격만곡증 수술 후기2

병원 첫 날 2인실로 배정받고 들어가보니 왠 할머니 하나,
나이가 82세였나... 별로 느낌이 안 좋더군요.
고령이시다보니 내가 뭐 수발 다 해야 하나... 이런 불길한 느낌이...


다행히 중병은 아니고 당뇨 합병증으로 온 분이라
당뇨 수치 불안과 몸 여기저기 아픈 것 그런 분이라
걱정이 조금 덜어지긴 했지만, 나중에 약간의 수발을...
병원식 먹고 식판 갖다놓기 + 화장실 갈 때  링겔대 끌어드리기
요런 정도를 좀 했고, 당뇨환자가 옆에 있으면 환장하는 점이
밤에 한 3시간 간격으로 계속 간호사들이 들어와서 불 켜고
각종 수치를 재기 때문에 숙면은 안녕~ -_-


이런 점들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이 할머니의 입.
블로그에도 써 놓지만 (내가 70까지 이 블로그가 갈지 안갈지 모르지만)
진짜 전 나이들면 "남들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모르는 사람한테
내 얘기 안꺼낼겁니다..." ㅡㅡ;; 간병 온 울 엄마랑 같이 다짐.


노인네들 자기자랑 많다고 듣긴 했는데 주변에 노인이 없어서 모르다가
완전 지치게 자기자랑을 끼얹는 이 할머니. 아들 딸 다  교수에 판사고
손자는 의사다. 그래서 의학지식이 난 있다.
들어보면 뭐 완전 자랑인데 이런 노인네들 자랑에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
참.. ㅡㅡ;;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니 현시창..


잘났다는 아들, 손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, 며느리 한 번 와서
한 30분 앉아 있다가고, 거의 할머니인 딸이 와서 한 30분 앉아 있다가고,
하루 2인실 있더니 아들네가 병원비 내 주는데 눈치보여서
6인실로 가야겠다며 이동 크리 ㄱ-...


들어보면 할머니랑 손자 1명이랑 널널한 아파트에 사는데 (100평이라함-_-)
손자가 의대생이라 거의 집에 잘 안 붙어있고 (장거리통학)
혼자 있는거나 마찬가지. 항상 죽고 싶다, 사는 낙이 없다, 죽어야 되는데
죽지 못해서 살고 나이 80이니 무릎도 좀 아프고, 죽어지지는 않고...
젊을 때 시장에서 장사해서 돈 많은데 돈 쓸 곳도 없고 어디 나다니지도 못하고
먹는 것도 당뇨 때문에 아무거나 못 먹고...


젊을 때 죽도록 고생해서 돈 벌고, 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늙고,
몸은 상해서 제대로 먹지도 돌아다니지도 못하고, 젊을 때 고생의 목표였던
자식들 (특히 아들들 많이 아꼈겠죠)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(물론 돈은 내지만)
배운 건 없어서 본인의 부와 인생은 자랑하고 싶고 (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데)
솔직히 엄마도 한 10년만 젊었으면 (덜 피곤하면) 네네~ 하면서
그 할매 비위도 맞춰주고 했겠지만.. 피곤하고 짜증나서
저 역시 그런 류의 말에는 별로 비위 맞춰주고 싶지도 않고
코 막고 나니 피눈물 흐르고 숨 못쉬고 난리가 아니라 걍 무시 -_-


어쨌든 그 할머니 보면서 제 노년을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.
저도 취미나 사회활동 끝나는 한 60 이후에 쓴맛 단맛
할 거 못할 거 다 겪은 후에는 그냥 죽었으면 좋겠는데
제 몸 속에 흐르는 장수 유전자 때문에 잘 안 될 것 같기도 하고
지구 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하여 적당히 살다가 한 65세 이후에
희망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안락사를 국가에서 해주면 좋겠네요.
물론 철저히 정신 온전할 때 개인의 신청에 의하여...
예전에 로마 귀족들은 어느 정도 나이들면 스스로 단식해서
자살 했다고 하는데 인구문제나 웰빙의 반대급부로 웰다잉에 대해서
사회적으로 얘기 될 때가 오면 틀림없이  '희망안락사제'가
나올거라고 저는 믿습니다.


그 할머니 나가고 들어온 사람은 50살 갑상선암 아주머니..
첨에 들어와서 제 병명을 묻더니 빵끗 웃으시며 본인은 가벼운 암인데
여기오기 전에 암병동에 있을 때 너무 힘들었다, 거기는 다 중증암
환자들 있고해서 분위기에 많이 눌렸는데 저야 뭐 그냥 코 막힌거
뚫으러 온 수준이고 층 자체가 이비인후과, 안과였기 때문에
그리 심각한 사람 없고 다 사지가 멀쩡하다는 특징이 있어서 -_-...
분위기는 어둡지 않았죠.


암도 1기고, 암이라고는 하나 거의 양성에 가까운 조직이고,

갑상선암 자체도 좀 심각성이 덜 한 암이라 수술 전날=입원 첫날은
매우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는데, 수술하고 나오니 사람이 180도 돌변.
간병 온 가족들에게 엄청 짜증내고 신경질 적으로 변하더군요.
마취 약 깰 때 부작용인 멀미 증상 때문이기도 하지만
작은 암이라도 역시 암이라는 질병의 포스가 사람을 저렇게 변하게
하는구나... 아줌마 본인은 정신 없어서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니까
보기도 안좋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..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.
또 저한테 닥치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은...


엄마가 단골로 다니던 집 앞 과일가게가 있는데 추석 지나고 나니
거의 2주동안 문을 안열더군요. 왜 그런가 했더니 추석 귀성길에
주인 아저씨 내외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저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
그렇게 됬다고... 설 때야 겨울이고 해서 눈도 오고 하니 그런 사고도
있지만 어찌 추석 때.. 그리고 꼭 사망사고가 되야 했는지...

또 엄마가 친하게 지내시는 야쿠르트 아줌마도 한 한 달 안보이다가
다시 배달하시길래 어떻게 됬냐고 물어보니 아저씨가 오토바이 타고
가시다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들어가는데 갑자기 주유소 진입하는
차에 치여서 즉사하셨다고... 보통 주유소 들어갈 때는 서행이라
사고 나기는 쉽지 않은데 그게 또 사망사고가 되다니...


엄마가 그 얘기 해주시면서 사람 살고 죽는거는 진짜 운명이니
나도 생사에 집착하지 않을거다,그러니까 너도 집착하지 말고
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ㄱ-... "엄마, 나야 늘 그런 말 많이 들었으니
무덤덤하지만 제발 밖에선 그런 이야기 하지 마,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"
이렇게 얘기해도-_-;; 숨길게 뭐 있냐, 나보다 더 적게 살고 죽는
사람이 오늘만 해도 수천 수만명이다. 죽는 사람은 정말 불가항력으로
죽고 그런거다. 넌 내가 갑자기 죽어도 슬퍼하지 말라며
정신교육 및 다짐을 받아내시더군요. 너무 쿨한 우리엄마 -_-...


담력이라던가 통으로 보면 엄마는 고무대야고 전 잘해봤자 국그릇..
솔직히 밥그릇 밖에 안되는 인간이라 분발해야겠다 싶습니다.


병원에서 며칠 지내 보니까 배우는 게 확실히 있네요.

댓글 4개:

  1. 아픈데도 포스팅해주시네요. 힘들지만 잠깐일 겁니다..ㅠ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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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2. 병원에 오래 있으면 정신병에 시달릴 듯....하군요.
    사실 화장장에 가면 다 돌아가신 분만 있지요. ㅠ.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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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3. 오픈아이디 몇 번을 시도하여 댓글 적었지만 안되네요.ㅜㅜ
    예전 글에도 댓글을 달았으나 등록이 안되네요.ㅜㅜ

    많은 경험 하셨네요.
    전 수술 받고 나서 정신이 없어 다른 분들과 대화를 잘 하지 못했어요. 그리고 제가 있던 곳은 6인실이었기에...
    그렇기에 어머니께서 병동에서 들으신 얘기를 후에 저에게 얘기해주시더군요.
    그 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환자의 비밀을 얘기하지 않겠다는 구절이 떠올라 일부러 적지 않았는데, (물론 그 때 블로그도 없었습니다. 블로그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....) 이 글을 보니 적어도 될 듯싶어요. 5년 정도 전에 얘기이니 누구인지도 모를테니..^^;;

    덕분에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.
    그리고 zizukabi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병원은 정말 있을 곳이 못 되는 듯싶습니다. 병을 치료하러 갔지만 병원에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기에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하고 슬프니까요.OTL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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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4. archmond/ 사실 세수할 때 실수로 찌르거나 건들지만 않으면 괜찮아요;; 아파서 꼭 기록을 하고 싶었어요 ㅠㅠ
    지저깨비/ 전에 동료 부친상으로 화장장도 가봤는데 병원과 만만치않게 분위기는 안좋더라구요..
    노슈/ 오픈아이디로 글쓰기가 안되나요...???
    이놈의 댓글 시스템 말썽이 참.. ㄱ-..
    제가 들은 이야기의 경우에는 크게 사생활 침해는
    아닌 거 같아서 부담없이 적었습니다 ^^;; 확실히
    아픈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다들 어둡고 부정적인
    에너지 축적이 장난 아닌듯 했어요. 결정적으로
    누워 지내면서 먹고 자고 하는 거 밖에 할 게
    없는 것도 한 몫을... ㅠ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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